#1 유언장이 공개되던 날
도시 새벽 5시 42분. 원룸.
방 안은 어두웠다. 작년 여름에 생긴 천장의 누수 자국이 흐릿하게 보였다. 늪 같은 새벽 공기가 좁은 방을 채우고 있었다. 침대 옆 바닥에 던져둔 휴대폰이 짧게 떨렸다. 무음으로 설정된 기기가 내는 진동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는 눈을 뜬 채 천장을 응시했다. 네 번, 다섯 번. 진동이 멈추기 직전에 나는 손을 뻗어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여동생 지수였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빠. 외삼촌 돌아가셨대."
수화기 너머 지수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잠에서 덜 깬 탓이 아니었다. 감정을 누르려는 의도적인 평온함이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이불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새벽 두 시쯤. 산영에서 전화 왔어. 심장마비라고 하네. 외삼촌 댁 마당에서 발견되셨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새벽 두 시. 마당. 심장마비. 단어들이 허공을 떠돌았다. 외삼촌 임재석. 그 이름이 나의 혀끝에서 맴돌다 멈췄다.
열다섯 살이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친 뒤 외삼촌은 우리 남매가 사는 도시의 낡은 빌라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다. 아침마다 주방에서 조용히 콩나물국을 끓였다. 도마에 둔탁하게 칼 부딪히는 소리가 잠든 나를 깨웠다. 멸치 육수 냄새가 좁은 거실을 채웠다. 나는 식탁에 앉아 말없이 국물을 떠먹었다. 외삼촌은 내 맞은편에서 그저 밥그릇을 비웠다. 위로의 말은 없었다. 슬픔을 이겨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 일주일의 건조한 침묵과 매일 아침의 콩나물국이 나를 견디게 했다.
기억은 다른 계절로 건너뛰었다. 어느 가을, 나는 산영군 외삼촌의 집을 찾았다. 외삼촌은 나를 집 뒤편의 매실밭으로 불렀다. 그는 쪼그려 앉아 마른 흙을 두 손으로 파냈다. 내 손을 끌어당겨 그 흙을 한 움큼 쥐여주었다. 까슬까슬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다. 우리는 함께 매실 모종을 심었다. 외삼촌은 모종 주변의 흙을 덮고 단단하게 다독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지훈이는 흙을 아는 아이가 될 거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묻지 못했다. 지금도 알지 못한다. 나는 흙을 모른다.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삶을 살았다. 나는 번아웃으로 나동그라진 도시의 패잔병이었다. 6개월째 백수였다. 수면 리듬은 무너졌고, 미래는 흐릿했다. 내 손에 남은 것은 흙이 아니라 마우스와 키보드의 닳은 플라스틱 감촉뿐이었다.
"아버지는 안 가신대."
지수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아버지는 어머니 장례식 이후로 외가와 연락을 끊었다.
"오빠가 가야 해."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뺨에 닿았다.
"가야지."
내 입에서 대답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화를 끊었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기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장례식장. 죽음의 공간. 그러나 그곳이 지금 나에게 유일하고 명확한 목적지가 되었다. 정지된 시간 속에 처음으로 이정표가 생겼다.
옷장 문을 열었다. 안쪽에 걸어둔 검은 정장을 꺼냈다. 반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었다. 어깨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작은 보스턴백을 바닥에 펼쳤다.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 세 켤레를 넣었다.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 가방 지퍼를 닫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 지도 앱을 열었다. 도시에서 산영군으로 바로 가는 기차는 없었다. 교통편을 조합해야 했다. 멍한 머리를 깨우며 화면을 스와이프했다.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어제와 달랐다. 도착해야 할 곳이 생기자, 머릿속 톱니바퀴가 억지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화면의 노선도를 눈으로 좇으며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경로는 두 가지였다. 하림시를 거치는 방법과 태정시를 거치는 방법. 하림시로 가는 무궁화호는 요금이 8천 원대로 저렴하지만 네 시간 반이 걸렸다. 하림 터미널에서 산영군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배차 간격이 두 시간이었다. 기차 연착으로 10분만 늦어도 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버려야 했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나는 태정시 경로를 검색했다. KTX를 타면 태정역까지 1시간 40분. 태정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시내버스로 15분. 그곳에서 산영군청 앞까지 가는 직행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총 이동 시간은 네 시간 남짓이었다. 요금은 3만 원이 넘었지만, 환승 대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나는 시외버스 시간표와 KTX 예매 창을 번갈아 띄웠다. 머릿속으로 이동 경로를 한 번 그려보았다. 오전 7시 KTX를 타면 8시 40분에 태정역 도착. 시내버스로 터미널로 이동하면 9시 10분. 9시 30분 산영행 시외버스를 타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무력감에 절어 있던 뇌가 오랜만에 명확한 답을 도출했다. 최적의 코스였다. 결제 버튼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전 7시 KTX 예매했어. 모바일 티켓 보낼게. 태정시에서 시외버스 타면 돼.]
동생도 나와 같은 계산을 마친 모양이었다. 나는 화면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는 오전 6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보스턴백을 메고 현관문을 나섰다.
오전 7시. KTX는 도시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차창 밖으로 건물들이 뒤로 밀려났다. 나는 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8시 40분 태정역에 내렸다. 역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9시 30분, 산영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국도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5월의 들판이 펼쳐졌다. 모내기를 앞둔 빈 들판은 가을걷이가 끝난 직후처럼 황량했다. 마른 흙바닥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외삼촌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마당을 상상했다. 그는 차가운 흙바닥에 등을 대고 밤하늘을 보았을까. 고통스러웠을까, 아니면 평온했을까. 상상은 꼬리를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오전 11시. 산영군청 앞 정류장.
시외버스가 에어 브레이크 소리를 거칠게 토해내며 멈춰 섰다. 나는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5월의 햇볕은 곧게 내리꽂혔다. 눈이 부셨다. 그러나 뺨을 스치는 바람 끝은 옅게 차가웠다. 시야의 끝마다 짙푸른 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과는 전혀 다른 압도적인 질량감이었다.
정류장 주변은 한산했다. 낡은 간판을 단 다방과 철물점이 보였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에서 마른 풀 냄새가 났다. 이 풍경 속에 외삼촌이 부재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피부에 닿았다. 그는 이 산과 들 사이 어딘가에서 평생을 보냈고, 이제는 영원히 사라졌다.
정류장 옆에 서 있는 낡은 은색 택시에 다가갔다. 뒷좌석 문을 열고 가방을 먼저 밀어 넣었다. 시트에서 오래된 방향제 냄새가 났다. 운전석에 앉은 기사 어르신이 룸미러 너머로 나를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는 시동을 걸며 무심히 물었다.
"……임 선생 조카신가."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더 묻지 않고 기어를 변속했다. 택시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임 선생'. 외삼촌의 이름 임재석이 산영군이라는 낯선 땅에 얼마나 단단히 박혀 있는지를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는 그저 한 명의 노인이 아니었다. 이 지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이름이었다.
택시는 읍내를 벗어나 왕복 이차선 도로를 달렸다. 주변의 건물은 점점 뜸해졌고, 비닐하우스와 과수원이 번갈아 나타났다. 20분쯤 달린 택시가 면 단위의 한적한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다 왔소."
요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택시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졌다. 나는 보스턴백을 고쳐 메고 얕은 언덕을 올랐다. 익숙한 길이었다. 어릴 적 가을마다 걷던 그 길이었다. 언덕 끝에 작은 흙담 집이 나타났다. 외삼촌의 집이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성한 풀이었다. 이름 모를 잡초들이 무릎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놓인 평상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 처마 밑에는 마른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렸다.
불과 몇 시간 전, 외삼촌은 이 마당 어딘가에서 숨을 거두었다. 주인을 잃은 공간은 이미 야생의 속도에 잠식되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달리 흙은 인간의 부재를 빠르게 지워버린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막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옆집의 낡은 사립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누군가 천천히 마당으로 다가왔다. 구부정한 등, 햇볕에 검게 탄 주름진 얼굴. 외삼촌의 30년 지기인 김 영감이었다. 그는 낡은 작업복 바지에 장화를 신고 있었다.
"지훈이 왔구나."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투박하고 거친 손이 내 팔을 짧게 잡았다. 단단한 악력이 느껴졌다.
"외삼촌이 마지막 1년 동안 네 얘기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어. 입버릇처럼 지훈이, 우리 지훈이 했지."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영감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내 팔을 놓아주고 고개를 숙였다. 마른 흙바닥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무겁게 겹쳐졌다. 햇볕은 여전히 정수리로 내리꽂히고 있었지만, 내 몸은 조금씩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외삼촌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백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도시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나에게 산영군은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흙과 바람으로 나를 맞이할 뿐이었다. 나는 그림자가 드리운 마당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신발 코 끝에 마른 흙이 닿아 있었다.
늦은 오후. 산영읍 외곽의 작은 장례식장 빈소.
조문객의 발길은 뜸했다. 복도 끝에 흔하게 늘어서는 화려한 화환은 없었고, 벽을 등지고 선 색 바랜 조화 몇 개가 전부였다. 빈소를 지키는 이들은 마을 어르신 일곱 분 정도였다. 나는 상주를 알리는 검은 완장을 찬 채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그들을 관찰했다.
박만수 어르신, 최영길 어르신, 정 씨, 박만호. 나는 그들의 삶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외삼촌과 함께 이 산영읍의 거친 흙바닥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늙어온 사람들이라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들은 장례식장의 관례인 검은 양복을 입지 않았다. 과수원이나 밭에서 곧장 달려온 듯 낡은 작업 점퍼를 걸치거나, 여러 번 빨아 색이 바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매 끝에는 마르지 않은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옷자락에서는 희미한 흙냄새가 났다. 빈소의 창백한 형광등 조명 아래서 그들의 모습은 묘한 이질감과 함께 묵직한 존재감을 풍겼다.
관절이 굵게 불거지고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들이 테이블 위를 오갔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채웠다. 누구도 소리 내어 통곡하지 않았다. 슬픔을 겉으로 과장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저 묵묵히 잔을 비우고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5년 전, 외삼촌과 함께 마을 가공실을 짓다 멈춰 섰던 일이 있었다. 그 실패의 기억과 미완의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그들만의 무거운 침묵이 빈소의 공기를 서서히 가라앉혔다. 나는 낯설고 단단한 연대의 곁에 머물렀다. 외삼촌의 부재는 그렇게 읍내 장례식장의 고요한 풍경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친 다음 날 오후. 나는 산영읍 중심가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낡은 2층 상가 건물이었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밟고 올라가 유리문을 열자, 묵은 종이 냄새와 오래된 목재 가구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실내는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캐비닛에 빼곡히 꽂힌 누런 서류철들이 긴 세월을 증명했다. 책상 너머에 앉은 변호사는 감정의 높낮이가 전혀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외삼촌의 유언장을 읽어 내려갔다.
법률 용어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나는 단독 상속자였다. 내게 남겨진 것은 산영읍 외삼촌 댁 바로 옆에 방치된 1,000평의 폐농지, 그리고 비가 새는 낡은 흙담 집 한 채였다. 도시의 속도에 치여 번아웃에 빠진 채 도망치듯 내려온 내게, 내 명의의 땅과 집이 생겼다는 사실은 일순간 기묘한 안도감을 줄 법도 했다. 하지만 변호사의 다음 말이 그 얄팍한 기대를 단숨에 끊어냈다.
"부채가 있습니다. 5천만 원."
변호사가 책상 위로 서류 한 장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하얀 A4 용지 위로 인쇄된 검은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출 원금 오천만 원. 정확한 숫자가 내 시선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한농금고에 농기계를 담보로 잡힌 돈입니다. 5년 전 가공실을 지으려다 중단되면서 남은 부채로 파악됩니다."
변호사는 익숙한 기계처럼 법적 절차를 연이어 설명했다. 내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첫째는 한정승인이었다. 상속받을 폐농지와 집을 처분하여 5천만 원의 빚을 먼저 정리하고, 만약 남는 금액이 있다면 그 잔여분만 상속받는 방식이다. 둘째는 단순승인이었다. 자산과 함께 부채까지 모두 내 명의로 온전히 떠안는 것이다. 결정 기한은 3개월 이내였다.
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5천만 원. 번아웃 상태로 직장을 잃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는 내게, 그 숫자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하고 무겁게 다가왔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당장 한정승인을 선택하고 이 무거운 책임에서 도망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눈앞의 조건을 차갑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내민 서류의 항목들을 훑으며 머릿속으로 상황의 뼈대를 재구성했다. 땅 1,000평의 현재 산영읍 공시지가와 실거래가 추정치, 낡은 흙담 집의 철거 비용 혹은 보수 비용, 그리고 담보로 잡힌 농기계의 현재 감가상각 가치. 만약 빚을 갚기 위해 땅을 급매로 넘긴다면 손에 쥐는 것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일 확률이 높았다. 산영읍 변두리의 폐농지는 거래 자체가 드물 테고, 담보로 잡힌 농기계 역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철에 가깝게 방치되었을 것이 뻔했다. 반대로 단순승인을 선택한다면, 나는 당장 매달 5천만 원에 대한 이자를 감당하며 저 버려진 땅에서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농사의 기본도 모르는 내가 1,000평의 흙바닥을 맨손으로 파헤쳐 이자를 막는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느 쪽이든 단순한 산수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도망칠 구멍은 좁았고, 정면 돌파의 길은 험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극도의 무력감이 덮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울에서 매일 겪었던 원인 모를 불안감보다, 눈앞에 명확한 숫자와 조건이 주어지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선택권이 내 손에 쥐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미약한 통제감을 불러일으켰다. 상황에 일방적으로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3개월이라는 유예 기간 동안 내가 직접 이 판의 구조를 뜯어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자 머릿속에 매실밭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릴 적, 밭고랑에서 구르다 흙투성이가 된 나를 보며 외삼촌은 호탕하게 웃었다.
'지훈이는 흙을 아는 아이가 될 거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외삼촌은 왜 이 방치된 땅과, 5년 전의 실패가 고스란히 담긴 빚을 하필 내게 남겼을까. 나를 이 시골 읍내에 억지로 옭아매기 위한 목적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외삼촌은 타인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유언장에는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5년 전 가공실 건축이 왜 중단되었는지, 그 멈춰버린 시간이 왜 5천만 원의 부채로 남아 있는지. 하지만 그 진의의 바닥까지 들여다보기엔 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오늘 당장 결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직 시간이 있어요."
변호사가 서류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당장 결론을 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일단 3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그동안 폐농지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한농금고에 묶인 부채의 성격을 파악하면 된다.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5월의 쨍한 햇볕이 가차 없이 눈을 찔렀다. 낡은 상가 건물을 등지고 서서 왕복 이차선 도로를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에 한농금고의 빛바랜 간판이 서 있었다. 촌스러운 로고 아래로 몇 명의 사람들이 무심히 문을 드나들었다. 저 건물 안에 외삼촌이 남긴 5천만 원의 흔적이 서류 형태로 묶여 있을 것이다. 비릿한 흙냄새와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이 섞인 산영읍의 공기가 폐를 한 번 깊게 채웠다가 빠져나갔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 맡던 건조한 공기와는 질감이 완전히 달랐다.
외삼촌 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읍내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낡은 철제 벤치 앞에 김 영감이 서 있었다. 구부정한 등에 흙이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는 노선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기다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김 영감은 말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굽은 등을 보며 직감했다. 내가 이 산영읍에서 짊어져야 할 것이 단순히 은행 서류에 적힌 5천만 원의 빚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외삼촌이 5년 전 어르신들과 함께 시도했던 가공실의 실패, 그 멈춰버린 시간이 고스란히 저들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상속받은 것은 땅과 빚을 넘어, 그 미완의 프로젝트에 얽힌 지분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인사말도 없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는 대신 읍내 외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철물점과 농약사, 낡은 식당들이 하나둘 뒤로 밀려나며 읍내 중심가의 소음이 점차 멀어졌다.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 산 능선 위로 늦은 오후의 볕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오후 4시. 산영읍 외삼촌 댁 마당.
김 영감이 무거운 걸음을 돌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녹슨 철대문이 닫히며 둔탁한 마찰음을 뱉었다. 철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이내 사라졌다. 나는 텅 빈 마당 한가운데 홀로 섰다. 오월의 볕은 따가웠다. 발밑에서 무릎까지 자란 잡초 사이로 버려진 시간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마른 풀잎들이 바람에 쓸리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머리 위로 5천만쯤 되는 빚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것은 도시 시중은행 모니터에 뜨는 깔끔하고 건조한 숫자가 아니었다. 한농금고의 붉은 도장이 찍히고 흙먼지와 땀방울이 무겁게 엉겨 붙은 부채였다. 농촌의 빚은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흙과 땀과 사람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그 무게를 가늠하며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다가갔다.
안방 문을 열었다. 낡은 창호지 문풍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방 안은 어둡고 서늘했다. 오래된 자개장과 칠이 벗겨진 문갑이 깊은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자개장의 문양은 빛을 잃었고, 문갑의 모서리는 둥글게 마모되어 있었다. 벽에는 외삼촌 임재석이 평소 입던 흙 묻은 작업복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옷자락 끝은 뻣뻣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소매 끝에 묻은 진흙 자국은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방 안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시큼하게 삭은 매실 향. 묵직한 들기름 냄새. 마른 흙냄새. 외삼촌의 시간이 고스란히 멈춰 있는 공기였다. 이 방에서 혼자 앓았을 외삼촌의 마지막 날들이 냄새 속에 배어 있었다.
걸음을 돌려 뒤뜰 헛간으로 향했다. 헛간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메마른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는 거미줄이 엉켜 있었다. 녹슨 농기구와 비료 포대가 한쪽 벽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호미와 낫의 날은 무뎌져 있었고, 비료 포대의 글씨는 낡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안쪽 구석에 빛바랜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다리 한쪽이 짧아 종이를 덧대어 놓은 낡은 책상이었다. 나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삐걱거리는 서랍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나무가 마찰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서랍 안에는 낡고 해진 가죽 표지의 일기장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손때가 까맣게 타 있었다. 일기장 바로 옆에는 코팅이 벗겨진 사진 한 장이 엎어져 있었다.
사진을 뒤집었다. 5년 전 외삼촌이 가공실을 짓다 만 공터가 배경이었다. 외삼촌 임재석, 박만수, 최영길, 정 씨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활기가 돌고 있었다. 짓다 만 철골 뼈대 앞이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단단한 눈빛들이었다. 주름진 얼굴마다 피로 대신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이 네 사람은 어떤 희망을 품고 철골을 세웠을까.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사진을 내려놓고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가죽의 거친 질감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첫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푸른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보였다. 외삼촌의 필체는 거칠었지만 힘이 있었다.
'2025. 1. 3. 새해. 또 한 해 가공실 못 짓는 곳에서 시작한다. 박만수·최영길·정 씨가 5년 전에 같이 시작한 곳. 내가 둘이 못 낸 천만씩 떠안고 떠나는 곳. 빚 5천만이 매년 한 칸씩 짓누르는 곳. 그런데 — 매년 새해 첫 페이지에 이 이름들을 적어두는 이유는 — 누군가 와서 다시 시작한다면 이 이름들을 먼저 찾으라는 뜻이다.'
나는 숨을 들이마신 채 길게 정지했다. 시선이 일기장의 마지막 문장에 단단히 못 박혔다. 외삼촌은 지난 5년 동안 매년 새해가 밝을 때마다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저 이름들을 적어 내려갔다. 이것은 실패를 자책하는 글이 아니었다.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남긴 부채의 기록도 아니었다. 언젠가 이 폐허에 다시 찾아올 누군가를 위한 명확한 이정표였다.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빠르게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 5천만쯤 되는 빚. 짓다 만 가공실 터. 남겨진 세 사람의 이름. 외삼촌이 박만수와 최영길의 몫까지 떠안으며 빚을 지켜낸 이유가 선명해졌다. 부채는 족쇄가 아니었다. 빚은 남은 사람들을 짓다 만 가공실 터로 다시 불러모을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자 연결 고리였다. 빚이 살아 있는 한 그들의 책임과 부채의식도 산영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외삼촌은 그것을 알고 빚을 유지했다. 무언가를 다시 짓기 위해서는 사람을 묶어둘 튼튼한 동아줄이 필요하다. 외삼촌에게는 그 5천만의 빚이 바로 동아줄이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외삼촌이 내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척박한 폐농지와 막대한 빚을 고스란히 남긴 진짜 이유.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정승인이라는 얄팍한 법적 절차 뒤로 숨어 빚을 털어내고 도망치지 말라는 무언의 당부였다. 도시의 좁은 원룸에서 육 개월째 천장만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침전하던 나의 삶의 궤도를 부수라는 뜻이었다. 도피처를 찾는 대신 이 오 년의 폐허가 그대로 남은 마당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라는 단단한 명령이었다. 무력감으로 가득했던 내면의 벽이 소리 없이 허물어졌다. 피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믿었던 빚이, 실은 이곳 산영읍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재건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외삼촌의 영리한 설계를 온전히 읽어냈다.
일기장을 조용히 덮었다. 손끝에 남은 가죽의 감촉이 단단했다. 헛간을 빠져나와 마당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가벼웠다. 짓누르던 부채의 압박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명확한 목적이 들어섰다. 마당 한가운데 멈춰 서서 한 번 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후의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월의 옅은 햇볕이 안방 문턱을 넘어 벽에 걸린 외삼촌의 낡은 작업복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옷자락이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나는 결심했다. 한정승인은 하지 않는다. 단순승인이다. 외삼촌이 남긴 빚을 온전히 내 몫으로 떠안는다. 잡초가 무성한 천 평의 폐농지와 이 오래된 집 한 채도 모두 받는다. 외삼촌이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가공실 터를 다시 파헤치고 뼈대를 세울 것이다. 박만수, 최영길, 정 씨. 일기장에 적힌 그 이름들을 내 발로 찾아가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들이 멈추었던 바로 그곳에서 내 첫 삽을 뜰 것이다. 이것이 외삼촌이 내게 남긴 진짜 유산이었다.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 갔다. 하늘이 푸른빛을 잃고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도시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변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단순승인하겠습니다."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짧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변호사는 내가 마음을 바꿀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빚을 떠안는 결정은 도시의 법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알겠습니다. 서류 준비하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되었다.
전화기를 옆에 내려놓고 마루에 그대로 누웠다. 오래된 나무 바닥의 서늘한 기운이 등허리를 타고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일주일 후 나는 산영읍 외삼촌 댁으로 완전히 이주할 것이다. 내일은 도시로 올라가 좁은 원룸에 남겨진 짐을 정리한다. 여동생에게도 이주 사실을 통보할 것이다. 내일은 도시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는 날이다. 다음 주는 산영이라는 낯선 땅에 보내는 첫 이주의 첫 밤이 될 것이다.
마루 위 어둠 속에서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감았다. 5년 전 사진 속 외삼촌, 박만수, 최영길, 정 씨의 흙먼지 묻은 얼굴들이 어른거렸다. 짓다 만 가공실의 붉은 철골 뼈대가 어둠 속에서 뚜렷하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뜨고 통장 앱을 열었다. 화면에 도시에서 버티며 남겨둔 마지막 잔액이 정확한 숫자로 찍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앱을 종료했다. 검게 꺼진 스마트폰 화면을 마룻바닥에 엎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