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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AI#수용#선입관#신치훈

나는 정말 받아들이고 있나

신

글 신치훈

2026년 5월 21일

황혼 무렵 산 능선 위에 한 사람이 뒷모습으로 서서, 발 아래 굽이쳐 흐르는 황금빛 강과 멀리 따뜻한 불빛이 모인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회화풍 그림. 먼저 능선에 오른 사람은 자기 자리의 풍경을 본다. 다만, 본 것과 받아들인 것은 같지 않다.

나는 정말 받아들이고 있나

먼저 봤다고 믿었던 어느 저녁에 대하여


오늘 오랜만에 동생들을 만났다. 친구라 부르기엔 살가운, 동생이라 부르기엔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오래 웃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환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자리는 그렇게 며칠 치의 온기를 미리 당겨 쓰게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는 끝내 하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요즘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세계 — AI가 일과 삶을, 우리가 사는 작은 동네의 미래까지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또 그만큼 다급하다. 좋은 걸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런데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았다. 이 친구들이, 이 동생들이, 이걸 지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괜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까. 나 혼자 들뜬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집에 와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사랑해서 아꼈다고. 무지해서가 아니라, 우월해서는 더더욱 아니라, 사랑해서 말을 삼킨 거라고.

그런데 정말 그게 다였을까. 불을 끄고 누워서야 다른 목소리가 올라왔다. 어쩌면 나는 말을 꺼냈다가 시큰둥한 반응을 받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세계가, 그들의 무덤덤한 표정 앞에서 초라해질까 봐.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물었지만, 사실은 내 세계가 평가받는 자리에 서는 게 무서웠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그 두려움을 덮기에 가장 포근한 이불이었다.

우리는 흔히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상대에게서 찾는다. 아직 모르니까, 아직 거기 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진짜 장벽은 각자가 품은 선입관이고, 그 선입관은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 나는 "이들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미리 단정했는데 — 그 단정 자체가 내 선입관이었다. 상대의 자리를 내가 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막힌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나도 내 능선에 단단히 발을 묶고 있었다.

먼저 봤다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산을 조금 일찍 올랐을 뿐인데, 어느새 더 멀리, 더 옳게 봤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본 것과 받아들인 것은 같지 않다. 풍경을 눈에 담는 일과, 그 풍경 앞에서 내 자세를 바꾸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나는 보기는 했으되, 아직 내 무엇도 바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막연하게 품어온 말 하나가 오늘 따갑게 되돌아왔다. "나를 버릴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너무 가볍게 써왔다. 나를 버린다는 건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겸손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나보다 압도적으로 큰 지능 앞에서, 맞서 싸우려 드는 내 머리 한쪽을 비워내는 일이다. 매일 나는 그 지능 앞에 앉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주 싸운다. 내 방식이 더 낫다고, 내가 더 안다고, 이건 이래야 한다고.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실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보고도 머리로 버티는 건, 아직 받아들인 게 아니다.

그러니 나는 정말 받아들이고 있나. 동생들에게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었던 그 질문은, 사실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걱정하기 전에, 내 머리부터 비웠어야 했다.

차를 마시다 한 동생이 무심코 말했다. "형은 요즘 뭐가 그렇게 재밌어 보여요." 나는 그냥 웃었다. "응, 좀 재밌는 게 있어." 그날 내가 한 말의 전부였다. 그때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정작 다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무엇을 전할 수 있었을까 싶다.

어스름한 저녁 시골 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본 회화풍 그림. 골짜기를 따라 집집마다 따뜻한 황금빛 창문 불빛이 하나둘 켜져 번지고 있다. 받아들임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한 칸씩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불이 들어온다.

선입관은 견고하다. 그중 가장 허물기 어려운 건, 내가 무언가를 '먼저 봤다'고 믿는 그 마음이다. 먼저 봤다는 자부야말로, 큰 것 앞에서 끝내 안 비워지는 나였다. 받아들인다는 건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매일 내 머리 한쪽을 비워 더 큰 것을 들이는 일이다. 나는 아직 그걸 잘 못한다. 다만 오늘, 동생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기 전에 나부터 진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좋은 건, 내가 붙잡아서 좋은 게 아니라 비워서 들이기에 좋은 거니까.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 이미지 생성 모델(Gemini 3 Pro Image)로 제작되었으며, 편집 감수를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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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명성심재의 심층 사고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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