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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AI#결과의시대#안목#프롬프트엔지니어링#교육#vibecoding#명성약국#ChatGPT

대충 해도 되는 시대 — 그래서 '안목'이 새로운 무기가 된다

신

글 신치훈

2026년 5월 20일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주세요 — 38초 뒤 돌아온 결과.

어제 새벽, 핀터레스트(Pinterest)를 넘기다가 눈에 띈 한 장이 있었다. 어딘가의 코카콜라 병뚜껑 사진이었다. 빨간 바탕에 흰 세리프 로고, 뚜껑 가장자리에서 흘러내리는 두꺼운 액체. 갑자기 우리 약국 이름을 저 뚜껑에 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캡쳐해 ChatGPT 5.5에 던지고, 이렇게만 적었다.

이 병뚜껑의 ‘명성약국’을 영어로 표현해서 쓰고 싶어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주세요.

38초 뒤, AI는 코카콜라의 디자인 언어 — 빨강의 채도, 세리프의 휘어짐, 흘러내리는 윤곽 — 를 그대로 흡수한 채 'Myeongseong Pharmacy'라는 로고를 빚어 돌려주었다. 그 위에는 "HEALTH · CARE · WELLNESS"가, 아래에는 "EST.1987 / YOUR HEALTH. OUR PRIORITY"가 차분히 박혀 있었다. 38년 된 미국 제약회사가 만든 병뚜껑처럼 나왔다.

나는 그날 결심했다. 한 번쯤 시대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보아야겠다고.

다시, 시대의 이름을 부른다

전에 「대상상의 시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인간의 상상이 더 이상 손과 도구의 정확함을 통해서만 검증되지 않는 시대, 그래서 상상의 디테일과 해상도가 곧 그 사람의 능력이 되는 시대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다음 단계가 와 있다. 결과의 시대.

상상의 디테일을 잡아 손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AI에 의해 통째로 줄어들고 있다. 38초의 병뚜껑은 한 장의 우연한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풍경 한 컷이다.

사라지는 것들 — 프롬프트조차 필요 없는 단계

지난 몇 해 사이에 사라진 단어들을 떠올려 보자.

처음에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있었다. 어떻게 묻느냐가 결과를 갈랐다. 사람들은 비싼 강의를 듣고, 강의록을 사 모았다.

그 다음에 나는 「제로 프롬프팅」이라는 글을 썼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그저 전문가들이 어떻게 묻는지 AI에게 역으로 물어보면 된다고. 그때만 해도 ‘잘 묻는 법’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올해 들어 그조차 필요 없어졌다. GPT-5.2와 Claude Opus 4.6, Gemini 2.5 Ultra는 흐릿하고 무책임한 문장조차 거의 근사하게 알아듣는다. IEEE Spectrum이 "AI Prompt Engineering Is Dead"를 표지로 올린 지도 한참이 지났고,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는 지난달, 자신이 만들었던 단어 "vibe coding"마저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단어는 ‘agentic engineering’ — '내가 어떻게 짤지'가 아니라 '결과가 잘 나오게 어떻게 맡길지'가 핵심이 된 풍경이다.

정직한 reframe — 결과를 결정한 것은 ‘내 명령’이 아니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를 더 확인해 보았다. 위 병뚜껑이 그럴듯하게 나온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한 줄짜리 게으른 명령이 했을까? 정직하게 말하면, 거의 아니었다.

결과를 결정한 것은 내가 입력으로 같이 던진 그 코카콜라 병뚜껑 사진 자체였다. 만약 같은 한 줄을 빈 캔버스에 던졌다면, 38초 뒤 돌아온 것은 어떤 평범한 약국 로고 한 장에 그쳤을 것이다.

거꾸로 ChatGPT에게 이 결과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영문 프롬프트로 풀어 달라고 부탁하면 이 사실이 즉시 드러난다. 결과는 이런 식의 200단어짜리 정교한 지문이었다.

A glossy red bottle cap shaped like a vintage pharmacy sign, viewed from a slightly elevated 3/4 angle, isolated on a clean white background. The cap is metallic and highly reflective, with deep cherry-red enamel, rounded crimped edges around the side, and realistic highlights and shadows. On the top surface, elegant white retro script typography reads "Myeongseong Pharmacy" in the center. Around the upper rim, small curved sans-serif text reads "HEALTH · CARE · WELLNESS", with "EST. 1987" underneath. Near the bottom rim, small white text reads "YOUR HEALTH · OUR PRIORITY". Add a tiny pharmacy emblem with a medical cross below the main lettering. Premium product mockup style, realistic 3D rendering, glossy lacquer finish, studio lighting, soft shadow, high detail, clean composition, centered object.

이 영문 지문에서, 내가 한국어로 입력한 문장이 차지하는 분량은 — 많이 봐주어 봤자 한두 줄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모델이 ‘참고 이미지’를 보고 스스로 채워 넣은 디테일이다.

이것이 결과의 시대의 진짜 풍경이다. 모델은 빈손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도구가 아니다. 좋은 입력을 함께 던져 주면, 그것을 흡수하고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한 도구다. 결국 결과의 질을 가르는 것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내가 무엇을 함께 넣어 주었는가’와 ‘돌아온 것 중 무엇이 좋은지 알아볼 수 있는가’.

그래서 남는 것은 — 안목 = 결과에 대한 고해상도의 상상력

"방법을 연구하지 말고, 결과를 연구하라."

이 한 문장이 다음 5년의 모든 분야를 관통할 것이다. 방법이 제약이 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결과를 정확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사람이 — 그리고 결과의 미세한 차이를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이 — 새로운 의미의 ‘잘하는 사람’이 된다.

안목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두 개의 능력이 한 단어 안에 묶여 있다.

하나는 좋은 결과를 함께 넣어 줄 수 있는 능력 — 어떤 참고를 던져 주어야 모델이 원하는 자리에 안착하는지를 미리 알아보는 능력이다. 어제 새벽의 그 한 장의 병뚜껑이 바로 이 능력의 발휘였다.

다른 하나는 돌아온 결과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골라내는 능력 — 1억 장의 결과를 5초에 만들 수 있는 시대에, 그 중 한 장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해외 디자인 업계는 이 변화를 한 단어로 압축하기 시작했다. "Taste is the only moat" — 안목만이 유일한 해자(垓子)다. 만들 수 있는 것이 무한해지는 순간, 가치는 '무엇을 만들까'에서 '무엇을 만들지 않을까'로 옮겨 간다. 한 디자이너의 글 한 줄이 인상적이었다. "AI는 안목이 없다. 통계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결과에 대한 고해상도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AI를 1억 명의 인턴처럼 다룬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저 부서지는 결과물을 빠른 속도로 생산하게 된다. 카파시의 말처럼, 꼭대기에서는 기술적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곱셈자가 되고 있다.

취미와 직업, 그 경계가 무너지는 자리

20년 전, 취미와 직업의 차이는 명확했다. 같은 작업을 두고 1일을 들이느냐 2일을 들이느냐, 어떤 도구로 어디까지 마감하느냐, 그 과정의 시간과 공의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그래서 우리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이제 그 경계가 다른 자리에 다시 그어진다. 같은 한 시간을 들여도, 어떤 참고를 같이 넣을 줄 알고, 어떤 결과를 골라낼 줄 아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물을 갖고 나온다. 한쪽은 그저 ‘대충 만든 무엇’을 갖고 나오고, 다른 한쪽은 정확히 자신이 원하던 것 — 혹은 그보다 더 나은 무엇 — 을 갖고 나온다.

그 결과, 평생 몽상가로 불려 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결과의 그림이 있고, 어떤 참고를 던져야 그 그림에 가까워지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들을 '실행력이 없다'고 부르며 옆으로 밀어 두었다. 이제 그 실행력의 자리에, AI가 통째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여기서부터가 진짜 문제다.

2024년 한국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49.9%가 이미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 있다. 고등학생만 보면 71~78%다. 교육부는 올해 2월, 교육청과 함께 '수행평가 시 AI 활용 관리 방안'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학교 현장에서 AI 오·남용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평가 방식, 우리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어디에 매달려 있는가. 과정에. 노트의 줄 맞춤, 풀이의 단정함, 1단계부터 5단계까지 빠뜨리지 않은 흔적에. 결과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결과를 상상하는 학습’을 어디에서 시키고 있는가.

예술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지금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길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순도 높은, 최고 경지의 예술을 가능한 한 많이 본다. 보고 또 보고, 그 안에서 미세한 차이를 가려낸다. 그 차이를 이용해, AI가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도록 — 좋은 참고를 골라 넣어 주고, 결과를 분간하여 다시 강제하는 — 그 훈련을 한다. 1만 장의 결과를 빚어 보고, 그 중 무엇이 좋은지를 다시 골라 모델 앞에 다시 들이미는 훈련. 이것이 결과의 시대의 학교가 짊어져야 할 자리다.

붓질과 스케치 연습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만 매몰되어 안목의 훈련을 잊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의미 없는 붓질, 의미 없는 연필 한 자루씩 닳리는 수많은 연습보다, 무엇이 좋은지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모델에게 다시 강제할 수 있는 손을 키우는 일이 먼저 와야 한다.

피지컬한 분야라고 다를까.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는 인간이 따라잡기 어렵다는 정도는 안다.

그렇다고 장인정신이 죽는 것은 아니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이 글은 ‘방법 무시’를 권하는 글이 아니다.

방법을 제약으로 두고 시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를 먼저 그려 놓고, 좋은 참고를 함께 넣고, 돌아온 결과를 다시 골라 모델 앞에 들이밀어 보면 — 기술이 그 격차를 메워 준다. 적어도 향후 5년 안에는, 점점 더 그래질 것이다.

장인정신은 죽지 않는다. 다만 그 정의가 이동한다. 더 이상 도구를 통제하는 손의 정교함이 아니라, 결과의 디테일을 향한 고해상도의 상상력과, 그것을 모델에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끈기가 새로운 장인정신이 될 것이다.

피지컬·의료·법률처럼 AI가 아직 메우지 못한 영역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조차, 결과를 머릿속에 그려 두고 일하는 사람과 과정에만 충실한 사람의 격차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가장 천천히 변하는 영역에서조차, 안목은 이미 새로운 무기가 되어 있다.

마지막에 남겨 둘 한 가지

여기까지 적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결과의 디테일까지도 결국 AI가 메우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안목’조차도 AI가 가져 버리면.

그건 비밀로 남겨 두자. 아직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향후 5년, 세상은 결과의 시대로 간다. 그것 하나만 확실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그 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배우고 있는지를 — 지금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살펴봐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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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명성심재의 심층 사고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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