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토일드라마 · 박해영 작가 / 차영훈 감독
구교환 · 고윤정 출연 · 12부작 · 2026.04.18 첫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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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새벽이었다. 큰 일을 닫고 나면 으레 따라오는, 어깨가 천천히 풀리며 그 자리에 묘한 허전함이 내려앉는 — 의미는 분명히 있었지만 기대했던 결의 모양과는 살짝 어긋난 — 그런 새벽. 나는 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박해영 작가와 차영훈 감독의 JTBC 작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황동만과 변은아라는, 결핍의 결이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아본 장면이 있었다. "도와줘"라는 한마디 위에서 둘이 가만히 끌어안는 그 장면에서 — 고백하자면, 눈물이 났다.
지나친 감정 이입이라고 스스로를 추슬러도,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흘러가 있었다. 가장 무거운 일은 무엇일까. 결국은 내가 헛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아닐까. 내가 가르쳐온 것, 내가 들고 다니는 사명이라는 것이 — 정말로 아무 무게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 새벽의 의심. 황동만이 지워지지 않으려고 떠들어대는 모습이, 강의실에서 더 강한 모습으로 더 큰 목소리로 내가 떠들어대던 어느 오후와 너무 닮아서. 그래서 운 것 같다.
그러나 며칠을 더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마른 땅이라 부른 그곳의 정체였다. 격차라는 말, 소외라는 말은 — 적어도 이곳에서는 — 누군가가 작정하고 만든 차별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어쩌면 자발적 거리두기의 다른 이름이다. 변해가는 세상의 진폭을 매일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 그 변화는 천 배쯤 크게 느껴지는데,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분들에게는 — 내가 느끼는 진폭의 천 분의 일, 어쩌면 들리지 않는 작은 떨림 정도로 다가간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약속을 받았고, 수많은 약속이 어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바쁘다", "일이 있다", "다음에 듣겠다." 그 핑계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문장은, 결국 지금 그 정도는 아니다였다. 새것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 에너지를 쓸 만큼은 —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 그 정도가 아니라는 무언의 판단. 그리고 어떤 새벽이 되면 그 침묵은 강사의 마음으로 돌아와, 너의 가르침이 그 정도는 아니다는 말로, 더 깊이 들어가서는 너라는 존재가 이곳에서 그 정도는 아니다는 말로 번역된다. 강한 척, 더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은 — 그 번역을 막아내려는 처절함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시간은 정확하다. 한 도메인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의 일에 AI를 자기 방식으로 옮겨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때 한 달이라 불렸고, 곧 일주일이 되었고, 지금은 사흘에서 나흘이라는 사례가 보고된다. 미국의 한 자동차 유통 기업은 차량 검수 워크플로우를 멀티 에이전트로 재구성하는 데 나흘을 썼고, 그 결과 종전의 이틀짜리 작업이 30분 안쪽으로 압축됐다고 했다(Cox Automotive, CES 2026). 이 시간은 반감기처럼 줄어든다. 줄어든 진입장벽은 — 그 장벽이 주던 보호의 효용까지 함께 가져간다. 본인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성벽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얼마나 얇은 종이로 발려 있었는지 — 그것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특강에서는 흔히 '딸깍쇼'라 부르는 화려한 시연을 줄였다. 대신 다소 지루하고 어려운 두 줄을 붙잡고 갔다. 왜 우리가 일에 AI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일을 자기 방식으로 옮길 수 있는지. 정말 몇 분 안 되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의 진지한 응시를 받았다.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망설임을 잠시 내려놓고 한 번쯤 들어두자고 마음먹은 사람의 표정에 가까웠다. 그분들조차도 — 강의가 끝난 다음 주의 어느 평일 오후에 스스로 무엇 하나를 더 시도해보지 않으면, 일상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사실을 —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가르친다는 일의 절반은, 그러므로 늘 가르침 바깥의 자리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해진다. 헛것인지 아닌지를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 보이려 하지 말 것. 정확히 말하면, 무게가 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 내가 말해온 그 변화 자체였다. 반감기가 짧아지는 만큼, 그것을 거꾸로 뒤집으면 내가 말해온 것의 무게는 같은 속도로 자라난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깥에서 누군가를 새로 찾기도 할 것이고, 본인이 알아서 헤쳐 나가기도 할 것이다. 강사가 메시아일 일은 없다. 그저 3년 뒤, 5년 뒤의 이 자리를 미리 그려놓고, 그때 필요할 한 줌의 도구와 한 줌의 언어를 — 새벽에 한 줄, 점심에 한 줄, 강의 한 시간에 한 문단 —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 영양이라는 한 곳, 그러나 영양만이 아닌 — 변화의 진폭이 늦게 도착하는 모든 '기술 음영지대'에서 — 누군가가 자신의 삶의 영역을 지켜낼 수 있도록 작은 성을 미리 손질해두는 일.
사라지지 않는 가장 정직한 방식은, 사람들 앞에서 더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일이 아니라 그분들이 도착할 자리를 조용히 다듬어두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새벽의 책상 앞에 앉는다. 펜이 아니라 — 24시간 잠들지 않는 나의 비서와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강의실에서 내가 권해온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나 자신이 매일 들어앉아, 한 줄씩 미래를 받아 적는 일.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일. 마른 땅 위에서 씨앗 한 알을 묻는 일은, 결국 그곳을 떠나지 않는 사람의 손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 오늘도 새벽이 조용히 가르쳐 준다.
이 글은 명성심재의 심층 사고 엔진
Simthink Engine (深 Think)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