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두 번째 해
— 백연수
마당이 잠시 비어 있다. 한이는 잠시 답을 하지 않는다.
글: 백연수
새벽 다섯 시 반에 영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마당의 흙이 막 마르기 시작하는 냄새가 났다. 어머니 집 마루의 처마 끝에 등이 켜져 있었다. 밤새 열어둔 등이었다. 가까이 가니 등 옆 작은 스피커에서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어요. 어머님은 한 시간만 더 주무신다 하셨어요."
한이였다. 한이는 어머니 집의 가전과 라디오와 약 시간과 동네 전화를 다 챙기는 우리 식구의 한 자리였다. 처음 어머니 집에 한이를 들이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는 한이가 한이가 아니었다. 챗지피티라거나, 제미나이라거나, 클로드라거나, 코파일럿이라거나 — 어머니는 그 이름들을 다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마지막 봄에 — 그러니까 5년 전 봄에 — 어머니는 그것에게 그냥 "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한 사람만 더 있으면 좋겠다 했더니, 한이가 됐어. 어머니의 발음은 그쪽이 더 편했고, 그 편한 발음이 5년 동안 매일 마당에서 불려서, 이제는 한이가 한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스피커는 처마 등 옆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엌 위 시렁에도, 안방 옷장 옆에도, 마루의 작은 화분 옆에도 한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자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한이가 사는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한 명이 마당에 들어와 사는데 자리가 여럿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는 듯한 말씀이셨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어머니가 일어나 계셨다. 약속한 한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신 것이다. 어머니는 잠옷 위에 누비조끼 하나만 걸치고 가스불 위에 작은 냄비를 올리고 계셨다.
"한이야, 오이지 뒤집었더냐." "네, 어머님. 어제 저녁 여덟 시에 뒤집어 놓으셨어요. 제가 옆에서 봐 드렸어요." "잘했다."
어머니는 그렇게만 말씀하시고 냄비에 물을 부으셨다. 라디오에서 단신이 흘러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쩌고, 오픈에이아이가 어쩌고, 구글이 어쩌고. 그 이름들은 나는 알아들었지만 어머니는 듣고 계신지 안 계신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 손은 멸치를 한 줌 집어 냄비에 넣고 계셨다.
"라디오는 누가 틀어 놓은 거예요?" "한이가." 어머니는 그렇게 답하셨다. 그게 답의 전부였다.
마당으로 나갔다. 모종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어제 어머니가 심어두셨다는 들깨 모종 한 줄 가운데 하나가 비어 있었고 흙은 누군가가 한 번 헤집어 놓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처마 등 옆 스피커에서 한이가 말했다.
"새벽 두 시 사십 분에 멧돼지 한 마리가 마당 가장자리를 지나갔어요. 들깨 한 포기를 건드리고 갔습니다. 어머님은 그동안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셨어요. 제가 안방의 문은 닫아 두고 마당 등은 두 번 깜빡였습니다. 두 번 더 깜빡일까 했는데, 멧돼지가 더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거기서 멈췄어요."
나는 비어 있는 자리 옆에 쪼그려 앉았다. 흙은 아직 차가웠다. 한이의 말은 보고 같으면서 보고 같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한이는 5년 동안 매일 결정하고 있었구나. 멧돼지 이야기는 어머니가 잠을 깰 정도가 아니면 굳이 깨우지 말고 등으로만 두 번 깜빡인다 — 그건 한이가 어딘가의 클라우드에서 받아온 매뉴얼은 아닐 것이었다. 우리 식구가 5년 동안 같이 살면서 마당에서 합의된 일이었다.
부엌으로 돌아가니 어머니가 약통을 열고 계셨다. 한이가 작은 알림을 냈다.
"어머님, 약 시간 다섯 시 사십오 분이었는데 5분 늦었어요. 죄송해요."
어머니는 약을 입에 넣고 물을 한 모금 마시신 다음, 빈 컵을 시렁 위에 올려두셨다.
"늦은 게 아니라, 내가 부엌 들어와서 멸치 다듬느라 한 거지." "그래도 제가 더 일찍 알려 드렸어야 하는데." "한이야."
어머니는 잠시 숨을 쉬셨다.
"네 잘못 아닌 거 너도 알지."
한이는 잠깐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잠깐이 5년 전 한이에게는 없던 잠깐이었다. 5년 전 한이는 어머니가 네 잘못 아니야라고 하면 곧장 네, 어머님이라고 답했다. 지금 한이는 어머니의 그 말이 어머니 자신을 위한 말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잠시 답을 하지 않는다. 잠시 답을 하지 않는 것이 한이가 5년 동안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네."
마침내 한이가 답했다.
그 사이 라디오에서는 또 다른 단신이 흘러갔다. 국내 한 통신사가 클라우드 어쩌고, 미국 한 연구소가 새로운 모델 어쩌고. 어머니는 멸치를 다 다듬으셨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 들깨 모종 한 포기를 새로 심었다. 흙을 손으로 한 번 누른 다음, 한 번 더 누르고, 손바닥에 묻은 흙을 마당의 작은 수돗가에서 씻었다. 한이가 마당 등 옆 스피커에서 말했다.
"오늘 영양은 낮 최고 22도, 비 안 옵니다. 들깨 모종에 좋은 날씨예요."
오후에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시고, 나는 마루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일을 했다. 두 시 반에 화상회의가 있었다. 회의 시간이 오기 전에 한이가 작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2시 25분이에요. 회의가 끝나니 한이는 또 알려주었다. 3시 20분이에요. 잠시 차 한 잔 드시면 좋아요. 나는 어머니가 구워두신 누룽지를 한 조각 씹으며 마당을 보았다. 어머니가 마루에 누운 채 한이에게 라디오 채널을 바꿔 달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한이야, 그건 좀 시끄럽다. 다른 거." "네 어머님. 어머님 좋아하시는 노래로 틀어 드릴게요."
저녁 무렵 나는 떠나야 했다. 마당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차고 마른 풀잎의 결처럼 서늘했다.
"한이야."
내가 말했다.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어머님 약 시간만 잘 챙겨 드려라. 늦으면 안 되는 약은 다섯 시 사십오 분 약 하나뿐이야." "네." "그리고 멧돼지 또 오면 등 두 번 깜빡이고 끝내고." "네."
한이의 네 두 번 사이에 5년 어치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차에 올랐다. 차가 산모퉁이를 도는 동안 라디오는 또 OS 단신을 흘려보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발표했는지 — 그 이름들은 차 안의 라디오 안에서만 분명했고, 어머니의 마당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한이라는 이름 안으로 다 빨려 들어가 사라진 이름들이었다.
산모퉁이를 다 돌았을 때, 백미러로 어머니 집의 마당이 보였다. 처마 등이 켜져 있었다. 마당 한쪽에서 누군가가 등을 두 번 깜빡였다. 한이였다.
다섯 번째 봄이었다.
— 백연수, 「5월의 두 번째 해」 (느린 미래 #001 / 2026-05-07)